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쑨원의 태도에서 일부 부정적 측면과 한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쑨원은...... 한국독립을 시모노세키 조약의 회복에 의해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입장에서 볼 때 시모노세키 조약의 회복은, 한국의 객관적인 독립을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지배에서 중국의 지배로 옮겨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쑨원의 삼민주의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인 '민족주의'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아시아 민족 연합 주장, 곧 '대아시아주의'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처지에 놓여 있던 중국의 국가적 독립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던 쑨원의 민족주의는, 중국과 같은 식민지 내지 식민지적인 상태에 놓여 있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약소민족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대변해 줄 수 있는 주장으로 환영받았다.
그러나 만주족의 이민족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체제를 수립하는 신해혁명을 통해, 중국이 이민족(만주족)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민족주의 혁명을 달성해가는 과정 속에서도 쑨원과 혁명파 인사들은 몽골과 같은 주변 약소민족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독립에 대한 쑨원과 혁명파 인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공화혁명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던 위안스카이를 비롯한 보수적 정치집단과 전혀 다른 것이 없었으니, 쑨원과 혁명파는 심지어 몽골이 계속 독립을 주장한다면 군대를 파견해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정몽론)에서도 위안스카이 쪽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주변 약소민족 문제에 대한 쑨원의 이러한 입장은 그의 영토 관념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도 확인 될 수 있다. 즉, 쑨원은 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주변 약소민족들의 영토를, 회복해야 할 중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쑨원은 장차 중국이 다시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한다면 이들 약소민족들은 스스로 중국에 복속해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주변의 약소민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쑨원의 이러한 입장이나 영토 관념은 한족 우월주의로 대변되는 전근대적 중화주의 내지 중화주의적 영토 관념과 구별되기 어려운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쑨원의 민족주의는 열강의 지배로부터 중국의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저항적인 면모를 가짐과 동시에, 전통시대에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주변 약소민족들의 중국으로부터의 해방과 독립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강대국으로서의 입장에 서서 팽창주의 적인 입장을 가지는, 양면적인 자기모순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쑨원의 한국에 대한 이해가 중화주의적 한계를 가진다... 신해혁명을 전후해 전개된 몽골의 독립운동에 대한 쑨원과 혁명파의 대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쑨원과 혁명파 인사들은 한국과 몽골을 비롯한 주변 약소국들을 회복해야 할 중국의 영토로 보는 전통적 중화주의적 영토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영토관념을 전제로 하는 한 쑨원이 말하는 '민족주의'가 더 이상 중국 주변 약소국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수 있는 복음이 되기는 어려웠다. 쑨원의 민족주의는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를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